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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도

나를 바라보는 기준

초등학교 때 매 학기마다 하던 다짐이 있었다. 교과서 깨끗하게 쓰기였다. 어릴 적 나는 교과서 모퉁이에 낙서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는데 스스로 그게 나쁜 습관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때를 다시 떠올린 것은 학부생 때 수강한 드로잉 기초 수업에서였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은 "학교 다닐 때 꼭 교과서에 낙서하는 애들 있죠?" 라고 말씀하셨다. 문득 기억나던 초등학교 때의 다짐으로 혼자 뜨끔하던 차에, "그런게 재능입니다" 라던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 깊은 것을 넘어 충격이었다.

 

한번도 의문을 제기해본 적 없던 나쁜 습관이 재능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로 설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내가 잘한다고 자부하는 것마저도 인정받기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생각치도 못한 부분에서의 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은 선물을 받은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다. 교수님의 짧은 한 마디 덕분에 초등학생 때의 나를 더이상 책을 더럽게 쓰던 아이라고 정의하지 않는다. 이제는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아이로 기억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알리바마 주립대학교에 재직중인 한혜민 교수님은 한 때 서울대 최연소 합격자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분이다. 아마 16살에 입학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 뿐만 아니라 4년인가 5년 만에 3전공으로 졸업을 했다고 한다. 거기다 카이스트와 스탠포드를 거쳐 석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인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 현 대학교에 교수로 취업?하시기 까지는 80번의 불합격이 있었다고 한다.

 

교수 면접에서 티칭 능력에 관련된 질문들도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쩌면 천재라는 특성이 교수라는 직업을 가지는데는 부정적인 요소였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 추측이라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째튼 간에, 우리가 부러워할만한 그 어떤 것들도 단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반대로 작은 관점의 차이는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혹은 싫어하던 것들을 장점으로 인식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나를 바라볼 것인가다. 획일적인 잣대와 외부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스스로를 질책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에는 늘 여러 길이 있듯이, 목표에 도달하는 것에는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한다. 고통스럽게, 스스로를 괴롭히며 가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긍정적인 관점과 경험을 동기로 목표에 도달하는 길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모습이 부정적으로 느껴질 때면 나는 어떤 기준으로 내 자신을 평가하고 있는지, 그 기준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