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인지 마가복음이었는지, 어딘가에서 예수님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이라는 표현을 쓰셨던 적이 있다. 어제 마태복음 11장을 묵상하면서 다시 그 말씀을 곱씹어보게 됐다. 우리는 대부분 미래를 바라본다.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예수님은 출발점을 바라본다. '지금'의 이유를 살펴본다. 그게 예수님과 나의 차이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을 때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안해도 됐던 것 같다고. 이전에 읽었던 불안에 대한 글이 그 때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원하는 곳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것은 사실 그리 많은 것들이 아닌데, 우리는 불안에 휩싸여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쌓느라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들어 삶의 다방면에서 이것을 느낀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지금에야 그것이 엄청 커보이고 이따금씩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마저 들지만, 사실 꾸준히 정진하다보면 못할 일은 그닥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이런저런 불안보다, 묵묵히 할 수 있는만큼의 최선을 다하는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더욱이 어떤 결과는 나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어지는 게 아니다. 우직함이 필요할 때면 학원비를 벌어가며 4년 동안 행시를 준비했던 선배의 얘기를 되뇌인다.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필요한 것들에 있지 않고, 내 노력이 오롯이 결정짓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내 노력과 하나님의 계획이 맞닿아 있을 때 이뤄지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에 집중하면 불안으로 인한 노력이 사라진다. 넘치든 부족하든 할 수 있는만큼의 노력을 들이게 된다. 나태의 삶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게 된다. 선택의 기로에서 늘 나를 향한 신의 뜻을 물었고, 내가 보이는 길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내게 필요한 것들을 배우게 하시고 채우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1차 시험이 끝나고 2차 시험을 앞두고 약간 텐션이 떨어졌다. 지금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되새길 순간인 것 같다. 출발점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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