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친구와의 대화에서 자신감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시작은 '최선'에 대한 확신이 없던 나의 태도에 대한 논의였다. 친구는 자신감은 '감정'이라며, 절대적인 기준에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구는 다른 방면에서의 나의 자신감을 이야기 해줬다. 예를 들면, 나는 대개 삶의 태도에 관해서 나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부분엔 정답이 없다. 다만 내가 믿는 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일 뿐이다. 절대적인 근거나 기준 없이 옳다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며, 그것에 대해 위축되지 않는 것이 자신감이라는 감정이라고 알려줬다. 노력에 대해서 스스로 할만큼 했다고 믿는 것, 그게 내게 필요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하루 골똘히 생각하다가, 불안과 우울과 스트레스가 겹쳤다. 글을 쓰고 조깅을 하고 돌아오니 성경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모든 답은 늘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베이직 교회의 조정민 목사님의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설교를 보게 됐다. 결론적으로 스스로 할만큼 했다고 믿지 못했던 이유는 노력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곧잘 남들이 가진 것들에 대한 선망과 욕망에 휩쓸려 다녔던 것이다. 성경에서 나온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타인의 것을 빼앗아 오려는 행동이나 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더라도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인데 타인이 가졌다는 사실에 욕심이 나는 그런 마음이다.
김학철 목사님은 이러한 탐심은 필연적으로 불행하다고 말씀하신다. 도달할 지점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 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그 안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성과를 낸다하더라도 최연소나 최초 등의 더 대단해보이는 타이틀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부터 했던 생각과 똑같았다. 학점을 잘 받았을 때도 부족함을 느꼈고, 어떤 과목에서 1등을 하더라도 2등과의 격차가 작은 것에 아쉬워 했다. 기준이 없으면 만족의 정도를 측정할 수 없고 만족의 정도를 측정할 수 없으면 불안함과 싸워야 한다.
아직 어떤 확실한 기준을 정하지는 못했다. 다만, 방향성을 바꿨다. 좋은 학교를 가고 수준 높은 논문을 쓰는 경제학자보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경제학자가 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좋은 학교의 여부와 상관없이, 수준 높은 논문을 쓰고 싶다고 열망하고 그것에 사로잡혀있는 것과 상관 없이,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그랬듯 일의 대세를 결정하는 것은 늘 하나님의 계획과 허락하심이었다. 수학이 도움이 된대, 언어가 중요하대, 코딩 능력을 키워야 한대 등 수단에 국한되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그곳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취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취하지 않는 결단력과 삶에 대한 자신감을 계속 훈련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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