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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

[時] 목련후기, 복효근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도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저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말아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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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은 시를 읽는 것은 교감이라고 했다. 시와 교감하면 감성에 면역력이 생겨서 슬픔도 비애도 줄어든다고 했다. 삶에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이별의 순간들이 있다. 이성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것들은 몇개 없을 것이다. 그런 헤어짐의 순간이 너무 고달플 때면 '차라리 시작하지 말걸'과 같은 생각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시인은 그런 마음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의 감정을 다른 이의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이 교감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누군가에게 털어놓은 듯한 후련함을 느낀다. 그게 감성의 면역력이 생기는 과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