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핵소고지: Hacksaw Ridge>는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사진, 앤드류 가필드)가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겪는 그의 신념과 군대의 특성 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다. 집총 거부로 인해 데스몬드는 군재판에 회부되는데 나에게는 그의 변론이 가장 인상깊은 장면으로 남았다. 데스몬드는 자신의 신념에 동의하지 못하는 재판관들에게 "세상의 잘못된 부분들을 다시 붙여나가려는게 그렇게 잘못된 일입니까" 되묻는다.
세계 2차대전, 문자 그대로 한 국가에 국한된 전쟁이 아닌 전세계가 폭력으로 물들었던 시간이었다. 그의 변론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폭력의 무게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던 주체적인 사고가 돋보인 대사였다. 더욱이 영화는 데스몬드가 비폭력주의자가 된 개인적인 사연과 참전을 결정하는 과정들을 다루면서 그의 행동의 옳고 그름보다는 신념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다행히도 군대에 남게 된 데스몬드는 일몰 후 전투가 중지된 틈을 타 핵소고지로 올라가 전투지를 벗어나지 못한 부상병들을 구해오는데 최선을 다함으로써 참전 군인으로써의 의무를 이행한다. 결국 그는 살인으로 물든 전쟁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린 군인이 된다.
재판관들을 향한 데스몬드의 질문과 또 그 대답이 된 그의 행보는 각자에게 보이는 세상의 어두운 부분은 무엇이며 각자의 방법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메세지를 던진다.
2. 한편 이러한 질문은 내게 너무 많은 선택지들을 떠올리게 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책 GRIT(안젤라 더크워스 저)의 일부를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책에는 워렌버핏의 직업에 대한 조언이 쓰여있다. 그는 본인의 직업에서의 목표 25가지를 적은 후 가장 중요한 것 5가지만 고르라고 한다. 그리고 고르지 않은 20가지를 마음에 새기라고 조언한다. 이는 우리가 가장 중요한 목표 5가지에 집중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과 공대 친구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외국어를 공부하던 언니 옆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내 모습이 참 멋없는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고 코딩으로 이런 저런 것들을 만들어내고 기계를 제어하는 공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경제학 공부는 참 느린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외에도 멋있어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경제학 밖에 있어서 이따금씩 나를 산만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비로소 눈에 띄지 않고 빠르지 않은 경제학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됐다.
일례로 의사로 근무하시다가 경제학 박사과정으로 진학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응급실에서 일하시던 때에, 의사로 살면 내 손이 닿는 사람들까지만 살릴 수 있지만 의료정책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경제학 공부를 결심하셨다고 한다. 눈은 3차원의 세상을 보지만, 책상 안에서 우리는 n차원의 세상을 본다. 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과 사고력은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은 모두에게 각자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를 주셨다고 한다. 내 마음이 이끄는 곳에 집중하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간 나의 직업적 사명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삶의 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O Me! O Life!, Walt Whitman (0) | 2020.03.02 |
---|---|
[성경]선배들의 취업설명회: 대세를 결정하는 것은 (0) | 2020.03.01 |
[드라마] 비밀의 숲: 사회적 책임 (0) | 2020.02.29 |
[詩] Serenity Prayer, Karl Paul Reinhold Niebuhr (평온을 비는 기도, 라인홀드 니부어) (0) | 2020.02.27 |
[時] 목련후기, 복효근 (0) | 2020.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