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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

생활 패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To Do List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18일이 첫 기록이었다.  4개의 구역(?)으로 분할 되어있는 400장짜리 노튼데, 처음에는 각 구역마다 쓸 내용들을 정했다. 그러다보니 뒤죽박죽이었다. 순서도 헷갈려서 공부체크란에 소비습관을 기록하기도 하고 금방 게을러져서 쓰다말다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달 반 가량을 적다보니 체계가 생겼다.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은 '실패는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큰 것을 남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애초에 실패라는 단어는 목표지점에서의 관점이다. 시작점을 돌아본다면, 조금이라도 나아왔을 것이다. 처음 할일들을 적기 시작했을 때, 상상과는 달리 노트 한권 안에서 허둥지둥 대는 내 모습이 멍청해보여서 그만뒀다면, 상상과는 달리 하루 이틀 건너 뛰는 게으른 내 모습에 실망해서 그만뒀다면 지금의 노트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혹은 처음 한다면 서툴고 지속적일 수 없는게 당연하다. 예상과 다른 부족한 내 모습에서 자책할 것이 아니라 시작하기 전보다 나는 얼만큼 나아왔나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발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곧잘 의욕과 욕심에 휩싸이곤 한다. 다행히 의지가 따라줄 때는 단기간에 어떤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커 갈수록 삶에는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전처럼 불안감이나 경쟁심과 같은 강력하지만 소모적인 감정을 주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승률이 낮은 방법이 됐다.

 

급할 땐 돌아가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조급함에 선택한 지름길이 사실은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일 때가 있다. 조급함과 그 이면의 불안함이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면 대부분 결과는 좋지 않다. 예상과는 다른 현실이 마치 내가 뒤쳐지거나 부족한 사람인듯 보이게 만든다. 그 괴리로 인해 마음만 바빠질 때마다 '급한 불은 끄고 봐야지'하는 마음에 지속적이지 못한 선택들을 하고 세 달이든, 일 년이든 시간이 흘러 돌아보면 스트레스 대비 적은 발전을 한 내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오늘의 내 모습이 눈에 차지 않아도, 섣불리 실망하지 말고, 긴 호흡의 일부라 생각하며 어쩌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원하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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