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라도 벅찬 아침은 있을 것입니다
열자마자 쏟아져서 마치 바닥에 부어놓은 것처럼
마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버릴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계산하는 밤은 고역이에요
인생의 심줄은 몇몇의 추운 새벽으로 단단해집니다
넘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습니까
저절로 익어 떨어뜨려야겠다는 질문이 하나쯤은 있습니까
돌아볼 것이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
최근에 이병률 시인의 바다는 잘 있습니다 시집을 읽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시 중 하나다. 시의 전체가 아니라 마음을 울렸던 구절들만 추려서 필사해두었다.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 있다는 말이 청춘의 맥락과 조금 동떨어졌지만, 타인을 도우며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력감이다. 언젠가 살면서 한 번 쯤 크고 작은 일들로 경험해봤을 무력감이 공감의 원천이 됐던 것 같다. 과거에 겪었던 힘든 시간들이 타인의 아픔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과 이해로 내 안에 자리잡았다. 그래서 모든 일에 공감할 수 없어도 유난히 공감이 잘 가는 부분들, 그 부분들이 내가 갚아야 할 과거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내게 어떤 일이 주어질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지 그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지만 과거를 돌아보면, 지울 수 없는 발자취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울이 썼던 서신서 중에서 몸이 있으니 학대 당하는 자들을 생각하라는 구절이 있었다. 경험의 가치는 스스로를 높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비슷한 어려움을 당할 사람들을 돕는 행동을 이끌어 내는데 있는 것 같다.
'삶의 궤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 (0) | 2020.10.07 |
---|---|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0) | 2020.08.31 |
요즘 지키고 싶은 것 (0) | 2020.06.28 |
종교의 허무맹랑함 (0) | 2020.05.03 |
[묵상]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0) | 2020.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