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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어떤 설교를 듣다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정치색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로마의 압제를 받던 시대임을 고려했을 때 당시 정치색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진보나 보수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나라로 치면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와 같이 로마에 저항해야 한다는 입장과 로마에게 우호적인 입장으로, 섞일 수 없는 관계였다고 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해당 설교에서 목사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이 '소통'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셨다. 이렇게 섞일 수 없는 생각들을 가진 제자들이 죽기 전까지 서로 화합하여 성경을 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가 예수님과의 소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성경의 초반 부분에는 바벨탑에 관련된 일화가 나온다. 신과 동등하게 높은 곳에 있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고 신이 인간의 교만한 마음에 대한 벌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해서 말이 안 통하게 된 사람들은 결국 탑을 완성하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일화에서 언어는 불화의 매개체로 쓰였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일화와 바벨탑 일화에서의 공통점으로 언어를 꼽으셨고 예수님이 언어를 사용하셨을 땐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도 화합하게 만드는 힘이 생겼다고 설명하셨다. 성경은 두 일화를 통해 사소한 것에서도 선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나의 부산스러움과 떵떵거리던 말들의 중심에 무엇이 있었나 돌아보게 됐다. (상징적 의미로)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결국 거창한 목표 속에는 나를 높이고자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문득 습관적으로 곱씹던 이사야서 50:4 말씀이 떠올랐다."주 여호와계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이사야 50:4)"  하나님께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묻는다. 이번의 답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그 단 한가지 목적 앞에서 내가 나를 높이려고 했던 가벼웠던 말들과 행동들이 부끄러워졌다.

 

스스로를 높이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들을 제하고 나니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잠깐 멈추게 됐던 것 같다. 이렇게 작은 것들부터 하나씩 하나씩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는 연습을 꾸준히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것들이지만 매일 새롭게 다짐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또 삐긋하게 된다. 익숙해졌다고 긴장을 놓지 말고 꾸준하게 매일 새롭게 겸손한 마음으로 다져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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